5장 3-32절

 5 3-32

 

3-5.

וַֽיְחִ֣י אָדָ֗ם שְׁלֹשִׁ֤ים וּמְאַת֙ שָׁנָ֔ה וַיֹּ֥ולֶד בִּדְמוּתֹ֖ו כְּצַלְמֹ֑ו וַיִּקְרָ֥א אֶת־שְׁמֹ֖ו שֵֽׁת׃

וַיִּֽהְי֣וּ יְמֵי־אָדָ֗ם אַֽחֲרֵי֙ הֹולִידֹ֣ו אֶת־שֵׁ֔ת שְׁמֹנֶ֥ה מֵאֹ֖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אָדָם֙ אֲשֶׁר־חַ֔י תְּשַׁ֤ע מֵאֹות֙ שָׁנָ֔ה וּשְׁלֹשִׁ֖ים שָׁנָ֑ה וַיָּמֹֽת׃ ס

아담은 백삼십 세에 자기의 모양 곧 자기 형상과 같은 아들을 낳아 이름을 셋이라 하였고 아담은 셋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구백삼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창세기 1장은 엘로힘께서 천지를 창조하셨는데, 요한복음 1장에서는 호 로고스가 세상을 창조(아들을 낳는)하셨다고 말을 한다. 호 로고스는 말씀이신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창세기 53절에서 아담이 아들을 낳는 것은 그런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아담이 130세에 하나님의 창조의 의미를 깨달았다는 것이다. 믿음의 선진들은 아들을 통해서 진리를 깨닫게 된다. 진리는 그리스도를 의미한다.

하나님의 형상으로 지으심을 받은 자가 사람(아담)이다. 이는 남자와 여자로 분리되기 전의 사람인 것이다. 그리고 창세기 53절에서 등장하는 아담은 남녀로 분리된 그 남자 아담인 것이다. 남자는 그리스도를 상징하고 여자는 하나님을 떠난 자(교회)를 상징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와 교회가 하나가 되어야 함을 말해주신다. 남자인 아담이 130세에 셋을 낳았다는 것이다. 셋은 남자 아담이 죽고 그리스도 안에서 다시 태어난 자(그리스도 상징)가 되는 것이다. 육적 몸이 죽어야 하나님의 형상이 회복되는 것이다. 이게 구원이 된다.

창세기 114절에서 『징조(오트)와 사시(모에드)와 일자()와 연한(샤네)이 이루라』고 말씀하셨는데, 사시로 번역된 절기와 날들(), 년한(샤네)들은 모두가 징조라는 것이다. 징조(오트)는 신호, 깃발, 횃불, 기념비, 전조, 표시, 기적을 나타낸다. 표적은 실체를 가리키는 싸인이라는 것이다. 여러가지 상징적으로 나타나는 계시라는 것이다. 성경에서 년한 즉 몇세에 죽었다 라는 표현의 연한도 표적이라는 말이다. 무엇인가 하나님이 말씀하시고자 하는 의미가 담겨져 있는 것이다. 그래서 징조(오트)에는 구원에 관한 하나님의 언약이 담겨져 있다.

(year 샤나  שָׁנָ֔ה )에서 히브리어 샤나(8141)8138에서 유래;‘년’(시간의 ‘주기로’):전체의 시대로 표현되었다. 8138은 기본어근;‘접다’ 즉 ‘이중으로 하다’(문자적, 또는 상징적으로);함축적으로 ‘변경시키다’(자동사, 또는 타동사로):-×다시하다(잘하다, 때리다), 변경하다, 이중으로 하다, 변경하다(달라지다),변장하다, 다양화하다, 왜곡하다, (~쪽을)더 좋아하다는 뜻이다.

해는 날의 계속되는 반복을 의미한다. 그래서 하루 하루가 징조라는 것이다. 낮과 밤이 계속 반복되는 삶이 하루이고 인생이라는 말이다. 그런 반복되는 삶 속에서 하나님의 구원의 진리를 발견해야만 하는 것이다. 이사야 611절에서『주 여호와의 영이 내게 내리셨으니 이는 여호와께서 내게 기름을 부으사 가난한 자에게 아름다운 소식을 전하게 하려 하심이라 나를 보내사 마음이 상한 자를 고치며 포로된 자에게 자유를, 갇힌 자에게 놓임을 선포하며 여호와의 은혜의 해와 우리 하나님의 보복의 날을 선포하여 모든 슬픈 자를 위로하되』여기서 은혜의 해에서 해가 샤나이다. 이 말씀은 메시야의 구원을 설명하는 것이다. 샤나는 반복이라는 의미도 있지만 변화시키는 의미도 있다. 바꾸는 것이 은혜이고, 하나님의 보복이 된다. 신원(나캄)의 날() 즉 하나님의 보복인 것이다. 보복은 하나님의 진노로서 하나님의 일하심이다. 하나님의 보복(진노하심) 우리를 변화시키는 것이다. 우리가 보기에는 자기를 부인하는 일(자기 십자가)이 될 것이다.

레위기 2510-13절에서 『너희는 오십 년째 해를 거룩하게 하여 그 땅에 있는 모든 주민을 위하여 자유를 공포하라 이 해는 너희에게 희년이니 너희는 각각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가며 각각 자기의 가족에게로 돌아갈지며 그 오십 년째 해는 너희의 희년이니 너희는 파종하지 말며 스스로 난 것을 거두지 말며 가꾸지 아니한 포도를 거두지 말라 이는 희년이니 너희에게 거룩함이니라 너희는 밭의 소출을 먹으리라 이 희년에는 너희가 각기 자기의 소유지로 돌아갈지라』희년은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 승천하신  오십일 후에 성령이 임하신 사건과 동일하다.

샤나는 이렇게 수많은 표적의 이야기로 등장하지만, 창세기 53절에서는 죽는 나이로 등장하는 것이다. 죽는 나이는 구원을 위한 증표인 것이다. 로마서 65절에서『만일 우리가 그의 죽으심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가 되었으면 또한 그의 부활과 같은 모양으로 연합한 자도 되리라』여기에서 130이라는 숫자와 930이라는 숫자가 등장한다. 이들 숫자의 의미는 여러가지로 해석할 수 있으나, 중요한 것은 태어나고 죽는 것을 나타내는 것이다.

 

6-8.

וַֽיְחִי־שֵׁ֗ת אַֽחֲרֵי֙ הֹולִידֹ֣ו אֶת־אֱנֹ֔ושׁ שֶׁ֣בַע שָׁנִ֔ים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שֵׁ֔ת שְׁתֵּ֤ים עֶשְׂרֵה֙ שָׁנָ֔ה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ס

셋은 백오 세에 에노스를 낳았고 에노스를 낳은 후 팔백칠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셋이나 에녹스가 깨달은 것은 여호와가 없으면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이다. 에노스의 이름 속에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라는 의미가 담겨져 있다. 우리는 에노스와 같은 이런 고백이 필요하다. 사도바울도 같은 고백을 한다. 갈라디아서 220절에서『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하나님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인간이라는 존재는 허무하고 오직 하나님 만이 존재하는 분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 비로소 여호와를 불렀다는 것이다. 부르다 라는 의미는 부르짖다 라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고백인 것이다. 자신이 이렇게 고백하는 순간 여호와를 소유하게 된다는 말이다. 이것이 곧 임마누엘(헬라어 파루시아)의 하나님이 되는 것이다. 하와는 가인을 낳았을 때 여호아를 낳았다고 말을 한다. 하나님이 약속하신 여인의 후손을 가인으로 생각하고 그렇게 말을 한 것이다. 그런데, 허무하게도 가인이 아벨을 죽여버린 것이다. 아벨의 이름은 허무가 된 것이다. 하와가 셋을 낳고 셋이 에노스를 낳았을 때 하나님이 없이는 존재할 수 없는 것이라는 것을 깨닫고 그때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는 것이다. 죽지 않으면 여호와를 소유할 수 없다는 말도 된다.

셋이 에노스를 낳는다. 에노스는 이쉬다. 이쉬(남자)는 땅을 가는 자다. 땅을 가는 자는 가인의 표상이다. 즉 하나님을 떠난 영들을 표현한다. 그래서 성경을 통해서 그리스도와 영들의 관계를 반복적으로 보여주신다. 가인과 가인을 예표하는 모든 인간들은 이 세상에서 자기가 하나님의 의를 이루어보려고 노력하는 자들이다.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자기의 의를 이루어보는데, 하나님은 그들이 실패할 것을 알고, 돌이켜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오도록 하고 있는 것이다. 이 관계가 노아의 시대와 또 그 이후의 시대로 계속 이어져 내려오고 있다. 따라서 복음은 창세기 3 15절 이후에 계속 끊이지 않고 내려오고 있었던 것이다.

 

9-11.

וַֽיְחִ֥י אֱנֹ֖ושׁ תִּשְׁעִ֣ים שָׁנָ֑ה וַיֹּ֖ולֶד אֶת־קֵינָֽן׃

וַֽיְחִ֣י אֱנֹ֗ושׁ אַֽחֲרֵי֙ הֹולִידֹ֣ו אֶת־קֵינָ֔ן חֲמֵ֤שׁ עֶשְׂרֵה֙ שָׁנָ֔ה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אֱנֹ֔ושׁ חָמֵ֣שׁ שָׁנִ֔ים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ס

에노스는 구십 세에 게난을 낳았고 게난을 낳은 후 팔백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구백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게난(7018)7064와 동형에서 유래;‘고정된’노아 홍수 이전의 사람으로 되어있다. 70647077에서 유래한 압축형;(고정된)‘둥지’, 때때로 ‘새새끼들’이 들어있는 둥우리;상징적으로는 ‘방’, 또는 ‘거처’:둥지, 방으로 표현되었다.

셋이 아들 에노스를 낳고 하나님이 없이는 도저히 살 수 없는 존재라는 것을 깨달았는데, 그때 비로소 여호와를 불렀다는 것이다. 부르다 라는 의미는 부르짖다 라는 것이 아니라 깨달음의 고백인 것이다. 그래서 셋이나 에노스는 하나님을 소유하게 되었다. 하나님께 부르짖을 때 하나님이 찾아가시는 것이다.

게난은 소유하다 라는 의미를 갖는다. 임마누엘 하나님이 되었다는 말이다. 임마누엘이 되는 순간 비로소 남자와 여자가 하나가 되는 사람(하나님의 형상을 갖는 첫사람)이 되는 것이다.

 

12-14.

וַֽיְחִ֥י קֵינָ֖ן שִׁבְעִ֣ים שָׁנָ֑ה וַיֹּ֖ולֶד אֶת־מַֽהֲלַלְאֵֽל׃

וַיְחִ֣י קֵינָ֗ן אַחֲרֵי֙ הֹולִידֹ֣ו אֶת־מַֽהֲלַלְאֵ֔ל אַרְבָּעִ֣ים שָׁנָ֔ה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קֵינָ֔ן עֶ֣שֶׂר שָׁנִ֔ים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ס

게난은 칠십 세에 마할랄렐을 낳았고 마할랄렐을 낳은 후 팔백사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구백십 세를 살고 죽었더라

마할랄렐(4111)은 하나님의 찬양이라는 의미다. 죽을 수 밖에 없는 존재가 하나님께 부르짖으매, 하나님께서 다가가 주셨으며 임마누엘이 되므로 하나님의 찬양(영광)이 되는 것이다.

 

15-17.

וַֽיְחִ֣י מַֽהֲלַלְאֵ֔ל חָמֵ֥שׁ שָׁנִ֖ים וְשִׁשִּׁ֣ים שָׁנָ֑ה וַיֹּ֖ולֶד אֶת־יָֽרֶד׃

וַֽיְחִ֣י מַֽהֲלַלְאֵ֗ל אַֽחֲרֵי֙ הֹולִידֹ֣ו אֶת־יֶ֔רֶד שְׁלֹשִׁ֣ים שָׁנָ֔ה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מַהֲלַלְאֵ֔ל חָמֵ֤שׁ וְתִשְׁעִים֙ שָׁנָ֔ה וּ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מֹֽת׃ ס

마할랄렐은 육십오 세에 야렛을 낳았고 야렛을 낳은 후 팔백삼십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팔백구십오 세를 살고 죽었더라

야렛(3382) 3381에서 유래되었는데, 기본어근;‘내려오다’(문자적으로‘내려가다’ 인습적으로 해안, 경계, 적진지 등의 낮은 지역으로 내려가다; 또는 상징적으로 떨어지다); 사역동사로‘내려가게 하다’(위의 모든 적용에서): 풍성하게, 데리고 내려오다, 운반해 오다, 들어내리다, 내려 놓다(내려오게하다, 내려오는), 떨어지다(아래로 떨어지다), 내려가다(밑으로 내려가다), 매달리다, 참으로, 잠기다, 억누르다

야렛은 진리의 계승자라는 것이다. 하나님의 찬양이 된 존재인 게난이 야렛에게 진리를 계승해 주는 것이다. 진리의 계승의 정점은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이다. 그 동행하는 삶이 바로 에녹을 상징한다.

 

18-20.

וַֽיְחִי־יֶ֕רֶד שְׁתַּ֧יִם וְשִׁשִּׁ֛ים שָׁנָ֖ה וּמְאַ֣ת שָׁנָ֑ה וַיֹּ֖ולֶד אֶת־חֲנֹֽוךְ׃

וַֽיְחִי־יֶ֗רֶד אַֽחֲרֵי֙ הֹולִידֹ֣ו אֶת־חֲנֹ֔וךְ שְׁמֹנֶ֥ה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יֶ֔רֶד שְׁתַּ֤יִם וְשִׁשִּׁים֙ שָׁנָ֔ה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פ

야렛은 일백육십이 세에 에녹을 낳았고 에녹을 낳은 후 팔백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구백육십이 세를 살고 죽었더라

에녹(2585)은 봉헌이라는 의미를 갖는다. 25852596에서 유래되었으며, 기본어근; 본래의미는‘좁히다’【2614와 비교】; 상장적으로‘봉헌하다’,또는‘연단하다;- 낙상식하다, 가르치다

 

21-24.

וַֽיְחִ֣י חֲנֹ֔וךְ חָמֵ֥שׁ וְשִׁשִּׁ֖ים שָׁנָ֑ה וַיֹּ֖ולֶד אֶת־מְתוּשָֽׁלַח׃

וַיִּתְהַלֵּ֨ךְ חֲנֹ֜וךְ אֶת־הָֽאֱלֹהִ֗ים אַֽחֲרֵי֙ הֹולִידֹ֣ו אֶת־מְתוּשֶׁ֔לַח שְׁלֹ֥שׁ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 כָּל־יְמֵ֣י חֲנֹ֑וךְ חָמֵ֤שׁ וְשִׁשִּׁים֙ שָׁנָ֔ה וּשְׁלֹ֥שׁ מֵאֹ֖ות שָׁנָֽה׃

וַיִּתְהַלֵּ֥ךְ חֲנֹ֖וךְ אֶת־הָֽאֱלֹהִ֑ים וְאֵינֶ֕נּוּ כִּֽי־לָקַ֥ח אֹתֹ֖ו אֱלֹהִֽים׃ פ

에녹은 육십오 세에 므두셀라를 낳았고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가 삼백육십오 세를 살았더라 에녹이 하나님과 동행하더니 하나님이 그를 데려가시므로 세상에 있지 아니하였더라

에녹은 봉헌된 자라는 것이다. 로마서 121-2절에서『그러므로 형제들아 내가 하나님의 모든 자비하심으로 너희를 권하노니 너희 몸을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거룩한 산 제물로 드리라 이는 너희가 드릴 영적 예배니라 너희는 이 세대를 본받지 말고 오직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아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이 무엇인지 분별하도록 하라』하나님께 봉헌된 자가 하나님께로 가는 것이다. 히브리서 11 5절에서 『믿음으로 에녹은 죽음을 보지 않고 옮겨졌으니 하나님이 그를 옮기심으로 다시 보이지 아니하였느니라 그는 옮겨지기 전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라 하는 증거를 받았느니라』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자는 어떤 자인가?

『므두셀라를 낳은 후 삼백 년을 하나님과 동행하며 자녀들을 낳았으며』삼백년에서 삼은 하늘의 숫자를 상징한다.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은 삼(3)과 관련이 깊은 것이다. 에녹이 365년을 사는 중에 에녹을 65세에 낳았는데, 65년간의 인생은 하나님을 찬양하고 진리를 계승하는 단계에 있었지만, 므두셀라를 낳을 때 비로소 하나님의 구원의 의미를 깨달은 것이다. 모든 인간은 물에 빠져 죽어야 하는 그런 존재라는 것이다. 그래서 그 진실을 깨닫고 하나님과 동행하는 삶을 300년 동안 살았다는 것이다.

 

25-27.

וַיְחִ֣י מְתוּשֶׁ֔לַח שֶׁ֧בַע וּשְׁמֹנִ֛ים שָׁנָ֖ה וּמְאַ֣ת שָׁנָ֑ה וַיֹּ֖ולֶד אֶת־לָֽמֶךְ׃

וַֽיְחִ֣י מְתוּשֶׁ֗לַח אַֽחֲרֵי֙ הֹולִידֹ֣ו אֶת־לֶ֔מֶךְ שְׁתַּ֤יִם וּשְׁמֹונִים֙ שָׁנָ֔ה וּשְׁבַ֥ע מֵאֹ֖ו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וּ֙ כָּל־יְמֵ֣י מְתוּשֶׁ֔לַח תֵּ֤שַׁע וְשִׁשִּׁים֙ שָׁנָ֔ה וּתְשַׁ֥ע מֵאֹ֖ות שָׁנָ֑ה וַיָּמֹֽת׃ פ

므두셀라는 일백팔십칠 세에 라멕을 낳았고 라멕을 낳은 후 칠백팔십이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구백육십구 세를 살고 죽었더라

므두셀라는 히브리어 알파벳을 파자하면 그가 죽으면 그것을 보내리라 라는 의미를 갖는다. 그것은 홍수이다. 그리고 스트롱 코드(4968)를 보면 창을 던지는 자라는 의미를 갖는다. 이 자가 죽으면 심판이 임한다는 것이다. 심판이 이미 던져졌다는 것이다. 에녹이 자기 아들을 므두셀라로 지었다는 것은 므두셀라가 죽는 날(969) 하나님의 심판이 이 땅에 임할 것이라는 계시를 받은 것이다. 에녹은 하나님의 심판이 임한다는 사실을 알고 살았던 것이다.

므두셀라가 살던 시대는 노아의 홍수심판이 가까운 시대였다. 므두셀라는 969세를 살았는데, 아담 때부터 노아까지 10대를 보았다. 므두셀라가 243세에  아담이 죽었다. 아담과 므두셀라는 200년이 넘는 세월동안 같이 살았다. 아담은 므두셀라에게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일을 말해주었을 것이다. 므두셀라가 243세때 아담 할아버지가 죽는 것을 목격했다. 므두셀라를 포함한 많은 아담의 후손들은 하나님 앞에 범죄하게 되면 반드시 죽음이 찾아오는 것을 깨달았을 것이다. 에녹이 므두셀라 이름을『죽는 날에 하나님의 심판이 올것이다』 라는 뜻으로 지었다. 그리고 그 이름을 계속해서 들었을 것이다. 그래서 므두셀라는 죽음, 재앙, 심판에서 구원받는 길을 노아와 같이 전했을 것이다. 홍수의 죽음 뒤에는 새생명으로 구원받는 것과 마찬가지로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죽음 뒤에는 부활이라는 생명이 찾아오는 것을 말해주신다.

 

28-31.

וַֽיְחִי־לֶ֕מֶךְ שְׁתַּ֧יִם וּשְׁמֹנִ֛ים שָׁנָ֖ה וּמְאַ֣ת שָׁנָ֑ה וַיֹּ֖ולֶד בֵּֽן׃

וַיִּקְרָ֧א אֶת־שְׁמֹ֛ו נֹ֖חַ לֵאמֹ֑ר זֶ֞֠ה יְנַחֲמֵ֤נוּ מִֽמַּעֲשֵׂ֨נוּ֙ וּמֵעִצְּבֹ֣ון יָדֵ֔ינוּ מִן־הָ֣אֲדָמָ֔ה אֲשֶׁ֥ר אֵֽרְרָ֖הּ יְהוָֽה׃

וַֽיְחִי־לֶ֗מֶךְ אַֽחֲרֵי֙ הֹולִידֹ֣ו אֶת־נֹ֔חַ חָמֵ֤שׁ וְתִשְׁעִים֙ שָׁנָ֔ה וַחֲמֵ֥שׁ מֵאֹ֖ת שָׁנָ֑ה וַיֹּ֥ולֶד בָּנִ֖ים וּבָנֹֽות׃

וַֽיְהִי֙ כָּל־יְמֵי־לֶ֔מֶךְ שֶׁ֤בַע וְשִׁבְעִים֙ שָׁנָ֔ה וּשְׁבַ֥ע מֵאֹ֖ות שָׁנָ֑ה וַיָּמֹֽת׃ ס

라멕은 일백팔십이 세에 아들을 낳고 이름을 노아라 하여 이르되 여호와께서 땅을 저주하시므로 수고롭게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리라 하였더라 라멕은 노아를 낳은 후 오백구십오 년을 지내며 자녀들을 낳았으며 그는 칠백칠십칠 세를 살고 죽었더라

셋의 7대손인 라멕은 777세를 살다가 죽은 사람이다. 777은 구원의 상징적인 숫자이기도 하다. 창세기 4장에서 가인은 7, 가인의 후손 라멕은 77배가 등장한다. 그리고 여기 셋의 후손인 라멕은 777이라는 숫자이다.

라멕은 자신에게 부여된 인생 속에서 믿음의 후손 노아를 낳는다. 그리고 노아에게 하나님의 은혜가 있음을 예언하여 말한다. 그는 노아라는 아들이 『땅이 저주 받은 뒤에 수고로이 일하는 우리를 이 아들이 안위하시리라』( 5:29)고 말했다. 라멕은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을 보는 믿음의 눈이 있었고, 소망으로 노아를 양육하였고, 노아를 통하여 하나님의 구원의 사랑이 다시 시작된다는 것을 보았다. 하나님을 따라 살던 라멕은 영적으로 강한 자가 되어 범죄가 관영하였던 홍수 이전의 시대를 청산하고, 하나님의 심판을 준비하는 자가 된 것이다.

라멕이라는 이름이 또 있었다. 가인의 계통을 따라 아담의 7대손으로 나타난 라멕은 한 마디로 무자비한 사람이다. 그는 가인처럼 또 다시 살인의 죄를 범한 사람이다. 자신에게 상처를 입힌 소년을 살해했다. 그는 살인 후, 그것을 노래로 지어 자신의 아내 아다와 씰라를 향하여 들려준다. 결혼제도를 파괴한 사람 라멕은 인류 최초로 살인을 한 가인과는 달리 두려움조차 없다. 가인은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면서 하나님의 보호를 간구하였다. 라멕은 살인을 두려워하지도 않고 심판을 두려워하지도 않는다. 라멕에게서 죄가 관영하였으며 라멕은 세상에 가득찬 죄의 정점에서 인간타락의 극단적인 모습을 자세히 보여준다.

 

32.

וַֽיְהִי־נֹ֕חַ בֶּן־חֲמֵ֥שׁ מֵאֹ֖ות שָׁנָ֑ה וַיֹּ֣ולֶד נֹ֔חַ אֶת־שֵׁ֖ם אֶת־חָ֥ם וְאֶת־יָֽפֶת׃

노아는 오백 세 된 후에 셈과 함과 야벳을 낳았더라

노아(5146)5118에서 유래되고, 이는 5117에서 다시 유래되었다. 조용한’:-쉬다(쉬는, 쉬는 곳)의 의미를 갖는다. 아담으로부터 노아까지는 10대의 계보를 나타낸다. 계보는 사람의 혈통에 따른 족보 개념이 아니라,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나타내는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의 세상 창조이후 10대까지 이어지다가 모든 인류가 멸절당하고 방주로부터 새창조가 일어나는 것이다. 이것은 구원에 있어서 죽어야 새창조가 일어난다는 진리를 말해주는 것이다. 그 마지막 정점에 노아가 등장하는 것이다. 쉰다는 것은 안식한다는 의미로 받아드려질 수 있다. 구원의 종착점은 하나님의 안식이 된다. 예수 그리스도 안으로 들어가는 자가 안식이 되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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