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장 1-2절

 51-2

זֶ֣ה סֵ֔פֶר תֹּולְדֹ֖ת אָדָ֑ם בְּיֹ֗ום בְּרֹ֤א אֱלֹהִים֙ אָדָ֔ם בִּדְמ֥וּת אֱלֹהִ֖ים עָשָׂ֥ה אֹתֹֽו׃

זָכָ֥ר וּנְקֵבָ֖ה בְּרָאָ֑ם וַיְבָ֣רֶךְ אֹתָ֗ם וַיִּקְרָ֤א אֶת־שְׁמָם֙ אָדָ֔ם בְּיֹ֖ום הִבָּֽרְאָֽם׃ ס

(이러하니라) 세펠() 톨레도트(계보의) 아담 베욤(때에) 베로(창조하실) 엘로힘 아담(사람을) 비데무트(형상대로) 엘로힘 아사(지으시고) 오토(그를) 자카르(남자와) 우네케바(여자를) 베라암(만드시고) 와예바레크(하나님이 복을 주시다) 오탐(그들에게) 바이크라(~라일컸다) 에트 쉐맘(그들의 이름을) 아담 베욤(날에) 히바레암(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이것은 아담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개역개정)

이것은 사람의 계보를 적은 책이니라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 그들이 창조되던 날에 하나님이 그들에게 복을 주시고 그들의 이름을 사람이라 일컬으셨더라(수정안)

 

이 계보는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는 사람(하나님의 백성)들에 대한 말씀이다. 하나님의 형상을 이어받는 자들은 이 땅에서 죽는 자의 모습을 나타낸다. 역설적으로 죽어야 하는 삶은 생명을 낳게된다는 것이다. 생명을 해산하는 여자들, 즉 교회의 삶이 죽고 다시 태어나는 모습을 나타낸다. 성도가 십자가를 부여잡고 그리스도와 함께 죽는 것은 죄와 사망의 땅에서 생명으로 들어가기 위한 필수적인 것이다. 반대로 자기를 위한 삶을 살아가는 자, 즉 악인들은 죽지 않으려고 여러가지 방법으로 자기 만의 성을 쌓고 있는 것이다. 이런 사람들은 둘째 사망에 처해지게 된다. 그러나 이 땅에 사는 동안에 옛사람이 죽는 그런 삶을 사는 자들은 영원한 부활의 생명으로 들어가는 것이다. 왜 이 땅에서 옛사람이 죽어야만 하는가? 그 이유는 옛사람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욕의 마음이기 때문이다. 인간의 마음 깊은 곳에 이 마음이 숨어져 있는 것이다.

이 삶이 바로 창세기 5장의 족보 속에서 나타난 에녹의 삶이다. 에녹의 삶은 믿음이 좋기 때문에 죽지않고 하나님 나라로 간다는 단순한 그런 의미가 아니라, 하나님의 생명을 가지는 사람들은 하나님의 강권에 의해 건짐을 받게된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창세기 5장의 의미는 이 땅에서 구원받은 성도가 해야 할 일에 대한 말씀을 전하는 것이다. 하나님의 일은 바로 예수 그리스도를 믿는 일이다. 예수를 믿는 것은 그의 죽으심과 연합되고, 그의 부활과 연합되는 것을 믿는 것이다. 죽음을 빼고 단순히 부활만 믿는 것이 아니라 반드시 죽는 것이 선행되어야 한다. 그래서 그 하나님의 일에 대해서 다른 사람들에게 전해야만 하는 것이다.

창세기 5장의 계보는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복이 이어져 내려오고 있음을 알려주신다. 그 복은 세상의 종말 때까지 이어질 것이다.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들은 하나님의 복의 전달자가 된다. 하나님의 복을 전달하는 자는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 자들이다. 하나님을 닮아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이다. 어떻게 인간이 하나님과 하나가 되는가? 그것은 예수 그리스도 안에 있으면 가능한 일이다. 하나가 되는 것과 닮는 것은 분명히 다른 것이다. 닮아가는 삶은 자기의 노력이 들어가지만, 하나가 되는 삶은 자기를 포기하고 그리스도 안에서 이루어지는 삶이 되는 것이다

톨레도트(תֹּולְדֹ֖ת  계보)는 창세기에서 10번 정도 등장한다. 아들을 낳는 역사이다. 아들을 낳는 역사를 우리는 출애굽기에서 볼 수 있다. 베레흐 쉐모트가 바로 그들은 아들이다 라는 의미다. 아들은 세상적 혈통으로 아들로 생각되지만, 이는 영적으로 하나님의 형상을 가진 아들을 의미하는 것이다.

톨레도(8435)3205에서 유래;(단지 복수형으로만)‘후에’, 즉 ‘가족’(상징적으로)‘역사’:출생, 계보등으로 설명된다. 3205를 보면 기본어근;‘새끼를‘낳다’ 사역동사로‘낳게 하다’ 의학적으로‘산파의 일을 하다’ 특히‘혈통을 보이다’:- 낳다, 낳게하다, 출산(【일】), 태어나다, (어린애, 새끼)를 낳다(낳게 하다), 자라다, 새끼, 어린아이, 오다, 해산하다, 알을 까다, 해산의 고통을 겪다, 산파(의 일을 행하다), 계통을 선언하다, …의 아들이 되다, 산고하는 여인

아담(אָדָ֑ם)120번과 121번이 있다. 아담 자손의 계보라고 하는 아담은 121번으로서 첫사람 아담이라고 했는데, 의미상으로는 사람이다. 하나님이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는데, 그들이 사람이라는 것이다. 창세기 52절에서 사람이라고 분명히 말해준다. 아담이라고 표현되므로 마치 아담이라는 이름의 주인공으로 생각되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의 아담은 120번인데, ‘붉으스름한’, 즉 ‘인간’(개인적,또는 종으로서의 ‘인류’ 등) :- x또 다른, +위선적인, +동류의, x낮은, 사람(비열한, 낮은), 인간으로 표현된다. 창세기 53(아담은 백삼십세에 아들을 낳아)에 등장하는 아담은 사람 중에서 남자에 해당하는 아담인 것이다.

첫사람(아담)은 엄밀히 사람인 것이다. 남자와 여자로 분리되기 전의 사람이다. 이 첫사람은 모든 피조물보다 먼저 나신 그리스도라는 말이다. 그리고 첫사람으로부터 남자(이쉬)와 여자(이샤)가 분리되는 것이다. 이 이쉬를 아담이라는 이름으로 불렀다. 즉 이 아담은 남자인 아담인 것이다. 남자인 아담은 세상에 태어난 모든 남자를 대변하고 여자인 하와는 세상의 모든 여자를 대변한다. 그들을 통해서 인류가 번식하고 확산되는 것이다. 여기에서 등장하는 계보는 첫사람 아담의 계보가 아니라, 남자인 아담의 계보가 되는 것이다.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בִּדְמ֥וּת אֱלֹהִ֖ים עָשָׂ֥ה ) 접두어 베(בְּ)가 붙어있다. 창세기 11절에서 베레시트와 같은 개념이다. 베는 하나님의 집(장소)이라는 의미다. 영어의 in에 해당된다. 따라서 하나님의 형상(모양)대로가 아니라 하나님의 형상 안에서 라고 번역되어야 한다.

모양이라는 말보다 형상이라는 말이 이해력을 높혀줄 수 있다. 첫사람 아담은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았다. 비드뭍(기본형:데뭍:1823)은 모양 닮음으로 되어있다. 창세기 126절에서 하나님이 이르시되 우리의 형상을 따라 우리의 모양대로 우리가 사람을 만들고라고 했는데, 형상과 모양은 우리말 사전에서는 별로 차이가 없다. 외형적인 모습을 두고 하는 말일 것이다. 그러나 형상(영어:image)은 특별한 속성을 지닌 존재(그리스도)이라고 말을 할 수 있고, 모양(:likeness)은 형상을 가진 자와 질적으로 동질성을 지닌 존재라고 말을 할 수 있다. 몸의 외형적 형태가 닮았다는 것이 아니라 본질이 같다는 말이다. 원본과 사본이 같다는 표현이다. 같다는 말은 동일한 효력을 발생한다는 것이다. 따라서 외형적인 어떤 사물에 대한 형상과 모양을 말하려고 하는 것이 아닌 것이다.  

하나님의 형상(모양)이 육체로 나타난 첫사람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에서 범죄한 영들이 아담 안에서 이 세상에 들어오는 것이다. 아담은 오실 자의 표상이다. 다시 오시는 하나님의 형상은 그리스도(마지막 아담)이시다. 로마서 5 14절에서『그러나 아담으로부터 모세까지 아담의 범죄와 같은 죄를 짓지 아니한 자들까지도 사망이 왕 노릇 하였나니 아담은 오실 자의 모형이라』

고린도전서 15 45절에서『기록된 바 첫 사람 아담은 생령이 되었다 함과 같이 마지막 아담은 살려 주는 영이 되었나니』생령은 살아있는 생명체다. 첫사람 아담이 이 땅에서 생명체가 되고 그 다음에 인간들이 생명체를 물려받는다. 그러나 생명체를 물려받지만 영은 죽어있다. 그래서 마지막 아담이 영을 살려주시러 오시는 것이다.

창세기 28 12절에서『꿈에 본즉 사닥다리가 땅 위에 서 있는데 그 꼭대기가 하늘에 닿았고 또 본즉 하나님의 사자들이 그 위에서 오르락내리락 하고』야곱이 벧엘이라는 곳에서 꿈을 꾼 내용이다. 사닥다리는 그리스도를 상징한다. 그리스도와 같이 영들(천사의 영)이 이 땅으로 내려오고 다시 올라는 것이다. 야곱은 이스라엘이다.

하나님이 야곱(이스라엘)에게『너희들이 어떻게 해서 이 땅에 오게되었는지』를 알려주시는 것이다. 이 표현을 예수님이 요한복음 1 51절에서 나다나엘에게 설명하신다.『또 이르시되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하늘이 열리고 하나님의 사자들이 인자 위에 오르락 내리락 하는 것을 보리라 하시니라』인자가 그리스도이시다.

『하나님이 사람을 창조하실 때에 하나님의 모양대로 지으시되 남자와 여자를 창조하셨고』(5:1) 아담은 하나님이 육체로 이 세상에 나타나신 첫사람이다. 사람들은 아담은 하나님을 닮은 형상을 가졌다고 말을 하지만, 그런 의미가 아닌 것이다. 남자와 여자는 아담으로부터 한쪽을 끄집어내므로 여자가 되고, 한쪽을 잃은 쪽이 남자가 되는 것이다. 곧 하나님 나라에서 그리스도 안에 있는 영들이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그리스도를 벗어나므로 그 영들(여자)이 아담의 몸을 통하여 이 세상에 태어나는 것이다. 아담은 한쪽의 틀을 잃어버리므로 남자가 되는 것이다. 그래서 남자(그리스도)와 여자(영들)가 다시 결혼하므로 하나로 돌아가는 것이다. 복이란 바로 그리스도 안에서 왔다가 다시 그리스도 안에서 돌아가는 것이 복이 되는 것이다.

인간이 이 세상에 태어났다는 것은 곧 범죄한 영들이 하나님 나라를 떠나서 이 세상에 왔음을 말하는 것이며, 하나님이 에덴동산을 두시어 그들을 이끌어두신 것은 다시 그들을 하나님 나라로 돌아가게 하신다는 의미를 내포하고 있다. 그리고 또한 이 이야기가 에덴동산에서 일어난 사건으로 전체를 재조명하고 있는 것이다. 즉 에덴동산에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지 말라는 것이다. 즉 사탄에 미혹당하지 말라는 것이다. 사탄은 스스로 하나님없이도 하나님처럼 될 수 있다는 미혹을 하므로 하와(영들)이 미혹당한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이 그들을 하나님 나라에서 세상으로 쫒아낸 것을 에덴동산에서 아담과 하와를 쫒아낸 것으로 표현하고 있다.

하나님께서 그리스도를 통하여 영들을 이 땅에 내보내면서, 이 세상에서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라고 하시면서 보내셨다. 그러나 그 의를 이루려는 것이 불가능함을 깨닫고, 다시 그리스도를 통하여 돌아오라는 것이다. 회개하여 돌아오는 자에게는 그 동안의 일을 묻지 않겠다는 하나님의 은혜가 담겨져 있다. 그런데, 대부분의 인간들은 스스로 의를 이루어보겠다고 신적인 존재가 될 수 있다든가, 우상에게 의존하던가 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모습들이 이스라엘에서 나타난다. 율법을 잘 지키면 하나님의 의에 도달할 수 있다고 생각한 자들이 이스라엘 이었다. 하나님은 탕자의 비유처럼 계속해서 회개하고 돌아오기를 기다리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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