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8-9절
4장 8-9절
ווַיֹּ֥אמֶר קַ֖יִן אֶל־הֶ֣בֶל אָחִ֑יו וַֽיְהִי֙ בִּהְיֹותָ֣ם בַּשָּׂדֶ֔ה וַיָּ֥קָם קַ֛יִן אֶל־הֶ֥בֶל אָחִ֖יו וַיַּהַרְגֵֽהוּ׃
וַיֹּ֤אמֶר יְהוָה֙ אֶל־קַ֔יִן אֵ֖י הֶ֣בֶל אָחִ֑יךָ וַיֹּ֨אמֶר֙ לֹ֣א יָדַ֔עְתִּי הֲשֹׁמֵ֥ר אָחִ֖י אָנֹֽכִי
와요메르(그리고 말했다) 카인 엘(~와
함께) 헤벨(아벨) 아히후(그 형제) 와예히(그들이
~에 가서) 비흐요탐(그들이
있었을 떄) 밧샤데(들에)
와야콤(일어나) 카인 엘(~을 대적하여) 헤벨(아벨) 아히후(형제) 와야하르게후(그를 죽이다)
와요메르(그리고 말했다) 야훼 엘(~에게) 카인 에(어디에) 헤벨
아히카(너의 형제) 와요메르 로(부정) 야다티(나는 알다) 하소메르(지키는) 아히(나의 형제) 아노키(나)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개역개정)
『가인이 그의 형제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형제 아벨을
쳐죽이니라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형제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형제를 지키는 자니이까』(수정안)
가인과 아벨간의 살인 사건은 땅의 열매로 제사를 드린 유대인들과 진리의 예수 그리스도를 십자가에 죽인 사건을 비교하면 유사하다. 유대인들이 예수님을 죽인 것은 율법주의에 따른 신성모독이었지만 그들 나름대로 열심(자기의 의)때문인 것이다. 로마서
10장 3절에서『하나님의
의를 모르고 자기 의를 세우려고 힘써 하나님의 의에 복종하지 아니하였느니라.』빌립보서 3장 5-6절『나는 팔일 만에 할례를 받고 이스라엘 족속이요 베냐민
지파요 히브리인 중의 히브리인이요 율법으로는 바리새인이요 열심으로는 교회를 박해하고 율법의 의로는 흠이 없는 자라』오늘날도 율법주의적 열심으로
신앙생활하는 자들이 바로 가인과 같은 자라는 것이다.
요한일서 3장 12절에서『가인 같이 하지 말라 그는 악한 자에게 속하여 그 아우를
죽였으니 어떤 이유로 죽였느냐 자기의 행위는 악하고 그의 아우의 행위는 의로움이라』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는 악한 자라는 것이다. 유다서 1장 11절에서는『화
있을진저 이 사람들이여, 가인의 길에 행하였으며 삯을 위하여 발람의 어그러진 길로 몰려 갔으며 고라의
패역을 따라 멸망을 받았도다』비진리를 전하는 거짓 삭군 목자들을 행해서 유다가 말하는 것이다. 가인이
발람과 같은 거짓 선지자와 같은 대열에 놓는다.
그런데, 마태복음
23장 35절에서 아벨에 대해서 의인으로 말한다.『그러므로 의인 아벨의 피로부터 성전과 제단 사이에서 너희가 죽인 바라갸의 아들 사가랴의 피까지 땅 위에서 흘린
의로운 피가 다 너희에게 돌아가리라』히브리서 11장 4절에서『믿음으로
아벨은 가인보다 더 나은 제사를 하나님께 드림으로 의로운 자라 하시는 증거를 얻었으니 하나님이 그 예물에 대하여 증언하심이라 그가 죽었으나 그
믿음으로써 지금도 말하느니라』가인은 악인, 거짓 선지자, 아벨은
의인으로 표현했다.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에게 말하고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이 말은 요한복음 11장 49-52절에서의 의미를 나타낸다.『그 중의 한 사람 그 해의 대제사장인 가야바가 그들에게 말하되 너희가 아무 것도 알지 못하는도다
한 사람이 백성을 위하여 죽어서 온 민족이 망하지 않게 되는 것이 너희에게 유익한 줄을 생각하지 아니하는도다 하였으니 이 말은 스스로 함이 아니요
그 해의 대제사장이므로 예수께서 그 민족을 위하시고 또 그 민족만 위할 뿐 아니라 흩어진 하나님의 자녀를 모아 하나가 되게 하기 위하여 죽으실
것을 미리 말함이러라』가인(가야바)이 아벨(예수 그리스도)에게 『백성을 위해 죽어줘야 하겠다』고 말하는 것이다. 가야바는 마치 백성들을 위하는 것처럼 말하지만, 백성들을 혼란에
빠뜨리므로 죽여버리겠다는 것이다. 결국 하나님의 뜻대로 예수 그리스도는 대속을 위해 백성들의 손에 죽는다. 『그들이 들에 있을 때에 가인이 그의 아우 아벨을 쳐죽이니라』들은 이스라엘을 상징한다. 이스라엘이 예수 그리스도를 죽인 것을 의미한다.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 아우 아벨이 어디 있느냐 그가 이르되 내가 알지 못하나이다 내가 내 아우를 지키는 자니이까』 하나님이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예수 그리스도가 부활하셨는데, 이스라엘은
예수님의 무덤을 봉하고 지키고 있었으며, 군병들이 아무리 무덤을 지키려고 해도, 예수님의 부활을 막을 수 없는 것이다. 심지어 바리새인들이 군병을
매수하여, 제자들이 시체를 훔쳐갔다고 말하는 것이다. 그래서
제자들이 훔쳐갔으므로, 우리는 예수의 시체에 대해서 모른다고 말하는 것이다.
창세기 3장 9절에서『여호와
하나님이 아담을 부르시며 그에게 이르시되 네가 어디 있느냐』라고 묻는 장면과 4장 9절의 모습은 유사하다. 하나님이 아담이 어디에 있는지 몰라서 묻는
것이 아니라, 현재의 처해진 상황을 묻는 것이다. 첫사람
아담은 죄의 몸을 주기 위해 세상에 온 그리스도이시다. 아담은 세상에 죄가 왜 들어왔는가를 스스로 말해주는
것이다. 가인은 죄의 몸을 물려받고 처음으로 살인을 저질렀다. 가인은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아벨을 죽였다.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들은 계속 십자가에서 죽이는 자가 되는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죄의 근원을 깨닫기를 원하시는 것이다. 죄의 근원은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심이다. 이 탐심이 하나님을 떠나고자 하였으며,
이 탐심이 예수를 십자가에 죽인 것이다. 가인이 그런 자라는 것이다. 가인은 죄를 깨닫지 못하는 자라는 것이다. 오늘날 교회 안에서도
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탐심을 가지고 있다면, 예수를 믿는다고 말을 하면서도 예수를 죽이는 자가 될 것이다. 가인은 하나님께 아벨이 어디있는지 알지 못한다고 말을 한다. 자기가
무슨 일을 저지러고 있는지 깨닫지 못하는 자가 가인인 것이다.
누가복음 23장
34절에서『이에 예수께서 이르시되 아버지 저들을 사하여 주옵소서 자기들이 하는 것을 알지 못함이니이다
하시더라 그들이 그의 옷을 나눠 제비 뽑을새』예수님의 수제자인 베드로도 십자가 앞에서 예수를 세번이나 부인했다.
베드로는 온갖 기적을 경험한 예수님의 제자였지만, 당장 육체의 죽음 앞에서는 예수님의 제자된
상황을 부인하는 것이다. 우리의 옛사람은 탐심이라는 죄와 연결되어 있다. 탐심은 상황에서 반응한다. 상황에 반응할 때 우리는 죄와 연결될
수 있는 것이다. 죄를 깨닫지 못할 때, 교회 안에서도 예수를
죽이는 자와 예수와 연합하여 죽는 자로 나뉘어 질 것이다. 죄에 대해서 정확히 깨닫는 자는 십자가에서
예수와 함께 죽을 것이고, 죄에 대해서 깨닫지 못하는 자는 십자가에서 예수를 죽이는 자가 된다는 말이다. 죄는 탐심이며,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것이다. 자기의 의는 하나님을 부인하는 악인이 되게 한다. 가인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를 대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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