4장 6-7절

 

6-7.

ַיֹּ֥אמֶר יְהוָ֖ה אֶל־קָ֑יִן לָ֚מָּה חָ֣רָה לָ֔ךְ וְלָ֖מָּה נָפְל֥וּ פָנֶֽיךָ הֲלֹ֤וא אִם־תֵּיטִיב֙ שְׂאֵ֔ת וְאִם֙ לֹ֣א תֵיטִ֔יב לַפֶּ֖תַח חַטָּ֣את רֹבֵ֑ץ וְאֵלֶ֨יךָ֙ תְּשׁ֣וּקָתֹ֔ו וְאַתָּ֖ה תִּמְשָׁל־בֹּֽו  

와요메르(이르시되) 야훼(여호와) (에게) 카인 람마(어찜이냐) 하라(분하여 함은) 라크(네가) 웨람마(어찜이냐) 나팔루(변함은) 파네카(안색이) 할로(~못하겠느냐) (~)테티브(네가 잘 행하) 쉐에트(받아지지) ()임 로(아니하) 테티브(잘 행하지) 라페타(문에) 하타트(죄가) 로베츠(엎드리느니라) 워에레카(네게 있으나)테슈카토(갈망은) 워앝타(너는) 팀살(다스릴지니라) (그것을)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선을 행치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개역개정)

여호와께서 가인에게 이르시되 네가 분하여 함은 어찜이며 안색이 변함은 어찜이뇨 네가 잘했다면 받아드리지 않겠느냐 네가 잘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리느니라 너에게 갈망은 있으나 너는 그것을 다스리라 (개정안)

테티브(기본형:야타브)선을 행하다 라고 번역했는데, 네가 잘했다면 이라는 의미다. 네가 잘했다면 너의 제물을 받지 않았겠느냐 라는 말이다. 로 테티브도 네가 선을 행치않으면 이라고 번역했는데, 네가 잘 하지 않으면 이다. 잘한다는 말의 의미는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을 의미한다. 하나님의 뜻대로 행하는 것이 바로 예배와 제사에 있는 것이다. 예배는 영과 진리로 자신을 영적 산제물로 하나님께 드리는 것이다. 야타브의 의미는 제물을 올바로 바치다 라는 의미(칠십인역). 로베츠는 엎드리다 라고 되어있는데, 엎드린다는 것은 싸우려고 하는 것을 나타낸다. 문은 하나님께 들어가는 문이다. 하나님 말씀을 듣지 않는 자들은 하나님의 문 앞에서 싸우려고 한다는 것이다. 이게 죄인 것이다. 47절은 하나님이 가인을 통해서 죄가 무엇인가를 알려주신다. 죄는 진리(예수 그리스도)에게서 벗어나는 것을 의미한다. 그래서 그리스도의 믿음이 되어야 하는데, 자기의 믿음을 가지게 되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고, 예수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서 죽지 않는 자는 결국 죄인이라는 말이다.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를 나타내는 가인, 세상 사람들이 모두 가인과 같이 자기의 의를 드러내려고 하는데, 하나님의 말씀에는 따르지 않는다는 것이다. 모두 자기의 길로 가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은 죄를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베드로전서 58절에서『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근신하라 깨어있으라는 말은 상황을 잘 분별하라는 것이다.

죄의 소원은 네게 있으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를 히브리어 성경으로 보면, 『워에레카(네게 있으나) 테슈카토(소원, 갈망은) 워앝타(너는) 팀살(다스릴지니라) (그것을)』이다. 테슈카는 사모함 갈망을 의미한다. 너에게 갈망은 있으나 너는 그것을 다스리라 라는 것이다. 갈망이라는 히브리어 테슈카는 헬라어 에피튜미아(탐심 욕심)와 같은 의미다. 에피와 티모스의 합성어이다. 티모스는 희생제사를 드리는 마음을 나타낸다. 십자가의 죽음 없는 제사는 탐심이라는 것이다. 자기를 부인하지 않는 제사는 자기의 이익을 위한 마음일 뿐이라는 것이다. 가인은 제사를 드리려는 욕망을 가진 자였다. 그런데, 제사를 드리는 마음이 문제인 것이다. 하나님을 떠나 세상에 온 자들은 모두 죽어야 할 그런 자들인데, 하나님께 그런 탐심(하나님처럼 되고 싶은 마음)에 대해서 죽는 마음의 제사가 아니면 아무런 의미가 없는 제사가 될 뿐인 것이다. 그런 마음이 없는 자는 살인하는 와 같은 것이다. 이런 자가 예수를 십자가에서 못박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가인에게 욕망을 잘 다스리라고 말씀하신다. 『워앝타(너는) 팀살(다스릴지니라) (그것 을)』팀샬의 기본형은 마샬이다. 창세기 118절에서『낮과 밤을 주관하게 (마샬)하시고 빛과 어둠을 나뉘게 하시니 하나님이 보시기에 좋았더라』밤과 낮을 주관하는 주체는 해, 달이다. 달은 율법을 상징하지만, 해는 복음을 의미한다. 율법과 복음을 통해서 다스리는 하나님이라는 의미다. 창세기 316절에서 『또 여자에게 이르시되 내가 네게 임신하는 고통을 크게 더하리니 네가 수고하고 자식을 낳을 것이며 너는 남편을 원하고 남편은 너를 다스릴 것이니라 하시고』여기에 다스리는 것이 팀샬이다. 교회는 그리스도에 의해 다스려지는 것이다. 남편은 그리스도, 아내는 그리스도 안에 있는 자를 상징한다.

아벨이 하나님께 제사를 드린 제물은 이스라엘이 버린 과부, 귀신들린 자, 맹인, 죄인들이었다. 이들은 이방인취급을 받는 자들이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 제물을 받으셨다. 가인이 드린 제물은 하나님이 받지 않으셨다. 하나님은 바리새인들처럼 인간이 스스로 의를 이룰 수 있는 자기의 의를 받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그리스도 안에서 자기를 드리는 자의 제물을 받으신다. 왜냐하면 그리스도께서 영원한 제물이 되셨기 때문이다. 하나님께 자신을 드리는 것은 바로 탕자가 회개하고 하나님께 돌아가는 그것이다. 이스라엘이 버린 과부, 귀신들린 자, 맹인, 죄인들이 바로 아버지께로 돌아가는 탕자들인 것이다. 하나님은 회개하여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자를 영접하신다. 그러나 자기의 의를 나타내려고 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지 못하게 하신다.

하나님은 자기의 의를 드러내는 자,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고, 스스로 선과 악을 분별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오지 못하게 하신다.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었다는 말은 내가 율법을 통해서 나를 지켜 의로워졌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자기의 의를 가지고 있는 자들은 받지 않으신다. 즉 가인의 예물을 받지 않으셨다.

『가인이 안색이 변했다』는 말은 이스라엘이 예수님에 대해서 분했다는 것과 같은 의미이다. 율법을 철저히 지키려고 하는 율법주의자들은 예수님이 말씀하시는 것에 대해서 분개했다. 예수님은 그들을 마귀의 자식이라고 한 것이다. 아마도 가인의 안색보다도 더 심하게 분노하게 되었을 것이다. 그래서 그들이 예수를 죽이기로 모의를 한 것이다. 마태복음 12 14절에서『바리새인들이 나가서 어떻게 하여 예수를 죽일까 의논하거늘』, 26 4절에서『예수를 흉계로 잡아 죽이려고 의논하되』 그 외에도 여러 군데 이런 표현들이 나타난다.

하나님이 가인에게 말씀하신다.안색이 변함은 어찌 됨이냐 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 내가 시키는 대로 너가 행하면 되는데, 엉뚱하게 행했다는 것이다. 하나님의 생각과 인간의 생각은 다르다. 인간들은 하나님의 뜻도 모르면서, 자기 생각대로 신앙생활하는 것이다. 율법을 잘 지켜행하면, 죄를 지어도 제사를 드리기만 하면,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으로 생각하는 것이다. 그런데, 하나님이 이런 자를 받지 않으신다.

신명기 5 21절에서『네 이웃의 아내를 탐내지 말지니라 네 이웃의 집이나 그의 밭이나 그의 남종이나 그의 여종이나 그의 소나 그의 나귀나 네 이웃의 모든 소유를 탐내지 말지니라』십계명의 마지막 계명이다. 하나님이 율법을 이스라엘에게 주셨지만, 이렇게 탐욕을 제거하는 일은 불가능함을 알려주신다. 하나님이 이런 말씀을 하지 않았으면, 인간 속에 탐심이 있는지를 깨닫지 못했을 것이다. 그래서 하나님은 모든 인간들에게 탐심이 있는 자들이라고 알려주신다. 그 탐심은 바로 하나님처럼 되고 싶어서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그 마음이다. 그래서 이스라엘 백성들이 그 계명을 지킬 수 없는 죄인들임을 깨달아야만 했는데, 깨닫지 못한 것이다. 이를 깨닫지 못한 자들이 선을 행하는 자가 아닌 것이다. 선을 행한다는 것은 하나님의 명령에 완전히 따를 수 있는 존재가 아님을 깨닫고, 돌이키는 자가 된다. 그런데, 백성들은 열심히 탐욕을 제거하기 위해 노력하고, 이만하면 됐다 라고 생각하고 자기가 스스로 의를 이룬 것 같이 생각하는 것이다. 이것이 하나님 보시기에 악하다는 것이다.

율법은 인간이 악한 자라는 것을 깨닫게 해 주신다. 로마서 3 19-20절에서『우리가 알거니와 무릇 율법이 말하는 바는 율법 아래에 있는 자들에게 말하는 것이니 이는 모든 입을 막고 온 세상으로 하나님의 심판 아래에 있게 하려 함이라 그러므로 율법의 행위로 그의 앞에 의롭다 하심을 얻을 육체가 없나니 율법으로는 죄를 깨달음이니라』 그래서 하나님이『네가 선을 행하면 어찌 낯을 들지 못하겠느냐』라고 말씀하시는 것이다. 원어에는 낯이라는 말이 없다.『네가 선을 행하면, 하나님이 열납하지 않겠느냐』라는 말이다. 가인은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과는 다른 행동을 하는 것이다. 가인이 하나님을 떠난 자요, 자기의 의에 빠져있는 이스라엘이라는 말이다. 그들은 선악을 알게하는 나무의 열매를 먹는 자요, 율법을 지켜 의를 이루어보겠다는 자의 모습이다.

예수님의 공생애 기간동안 말씀하신 대부분은 자기의 의를 버리고,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고백하고 하나님께 돌이키라는 말씀이었다. 그래서 예수님은 이방인들이 먼저 구원을 받게 될 것이라고 말씀하셨던 것이다. 그런데, 유대인들은 예수를 죽이려고 모의하고, 정말 십자가에서 죽게 한 것이다.

『선을 행하지 아니하면 죄가 문에 엎드려 있느니라』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을 행하지 않으면, 죄가 된다는 것이다. 하나님께서 율법을 주셨을 때, 하나님의 뜻을 깨닫고, 죄인들은 할 수 없음을 고백하고, 장차 오실 그리스도를 발견하는 것이 하나님이 원하시는 행함이었다. 그런데, 율법을 행하여 의를 이루려고 하므로, 하나라도 지키지 못하면 죄인이 되는 것이다. 그래서 선을 행하지 않는 자가 되어 죄가 있는 것이다. 율법은 죄를 깨닫게 해 주셨는데, 백성들은 『나는 할 수 없는 죄인입니다』라고 하나님께 무릎을 꿇는 자가 없다 라는 것을 말해주신다.

하나님이『죄가 너를 원하나 너는 죄를 다스릴지니라』라고 말씀했는데, 가인은 죄인임을 깨닫기는커녕, 아벨을 죽여버린 것이다. 이스라엘 백성들도 마찬가지로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박아버렸다. 탐심은 우상숭배다. 왜냐하면 내가 스스로 나의 의를 지키려고 하므로 우상인 것이다. 야고보서 1 15절에서『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자기의 의를 내려고 하는 모든 하나님을 떠난 자는 사망에 처해질 수 밖에 없는 존재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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